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이귀재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게 하시느니라.(여호수아 1장 9절)
 
 
 
   풍랑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함께 울며 기도하고 작은 힘들을 모아 어깨를 다독여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우리'가 있다는 것은 고난 중에 오는 축복일수도 있다. 내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위로하며 기도해주신 목사님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들, 평생토록 갚아도 못 갚을 사랑의 빚을 잔뜩 짊어지고 나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손주들은 참 예쁘다. 때로는 그들의 시달림에 지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들이 있을까 싶으니 나는 영락없는 손주 바보다. 바쁜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딸들과 식탁에 둘러 앉아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 또한 행복이다. 딸들이 퇴근을 했으니 나도 이제 퇴근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할 즈음이었다.
   2014년 6월의 어느 날 저녁, 큰 딸아이가 내 집을 찾아왔다. 나를 보러 왔다는 아이의 표정이 여느 날과 달라 보여 긴장이 됐다. "무슨 일이 있니? 매일 보면서 새삼스레 할 얘기가 뭔데?" 한참을 망설이는 딸아이를 재촉해 들은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 못했다기보다 이해 못한 척 했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 언제나 바쁘고 긴장되는 일터로 향하는 딸은 내게는 아픈 손가락 같이 늘 애달프다. 어려서는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업고 새벽이건 밤중이건 병원 문 두드리는 일이 잦았었다. 병치레가 잦은 아이 때문에 늘 가슴 졸이며 사는 나에게 '흙을 밟을 때 쯤이면 괜찮아진다'며 위로하시던 어른들 말씀대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놓게 되었다. 다행히 건강하게 성장했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별다른 불만 없이 반듯하게 자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한다고 생각하니 고맙도 대견했다.
   처음 입사한 ㅈ은행이 몇 년 후 ㅅ은행과 합병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홀몸도 아닌 볼록한 배를 안고서, 힘들고 어려운 모든 과정들을 잘 견뎌 합병한 은행에 합류했었다. 다행히 아이의 일터는 후생복지가 잘 되어있어 해마다 건강검진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해, 또 올해도 아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검진에 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만 흘러가 주지는 않는다. 아이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재검을 해야 했고, 결과는 난소암이 발견된 것이다. 당황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야 나를 찾아 온 것이다.
   1년 전 생사를 넘나들던 남편이 조금씩 회복되어 가며 우리는 아주 작은 여유와 안정을 찾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 딸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아무리 한 집 건너에 암환자가 있다고 해도 왜 하필 내 딸이냐고, 그 아이는 내게 딸이기보다 든든한 아들이었고 때로는 다정한 친구였고, 힘들고 무거운 짐을 서슴없이 나눠주던 남편같이 의지하던 딸이란걸 하나님도 다 알고 계시지 않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동안에 혼자 겪었을 딸 아이의 고통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면서 "그깟 일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전했냐? 네 아버지 살아난 것 봐라. 그깟 난소암 별 것 아니다. 걱정마라."하며 아이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었다.
   아이를 보내놓고부터 떨려오는 몸과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쳐보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치 뜨거운 불판 위에 앉은 사람처럼 밤새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온 방안을 서성이다가 교회로 뛰었다. 엎드려 통곡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부터 해야 하지,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문득 내 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전에는 기억도 못했고 잊은 지도 오랜 온갖 죄들이 내 뇌리를 치며 떠올랐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고 온 몸은 오그라질 듯이 아팠다. 내 죄 때문이란 생각을 하니 의자에 편히 앉아 하나님께 아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자 아래로 내려왔따.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따. 바닥으로 내려가 엎드렸다. 아니 더 깊은 땅 속 어딘가로 내려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치료를 위해 아이가 휴직 신청을 하고 들어왔다. 어렵게 수술날이 정해지고 여러 검사가 진행됐다.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담당의와 수술할 외과의와 상담을 했다. 검사 결과에서 나타난 종양의 크기며 전이 여부, 주변 장기들에 전이됐을 경우 제거할 부분과 그 후속 조치 등 마지막 최악의 상황까지 설명을 듣고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따.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떨리는 내 마음을 깊이 깊이 숨기고 태연을 가장했따.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아멘
   작년 이맘때 수술실로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며 애간장을 녹이던 그 안으로 오늘은 딸아이를 들여보냈다.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자 그 동안 나를 강하게 묶어두었던 내 몸의 모든 신경들이 무장해제가 된 듯했다. 손발이 떨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이 도무지 진정되지를 앉았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병원 교회로 내달렸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이 아픈 마을을 아시리라.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수없이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핵연료만큼이나 독한 것이 항암제란다. 독한 항암제는 암세포 뿐만 아니라 건강한 세포까지도 죽이는 무서운 독약이라고 했다. 약 때문에 듬성해진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을 갔다. 미장원 거울 앞에 아이가 두 눈을 꼭 감고 앉아있다. 미용사의 손길을 따라 몇 오라기 남은 머리털이 모조리 밀려나가자 아이의 머리통이 푸른빛이 돌만큼 희었다. 사람의 신체 부분 중 이처럼 희고 깨끗한 곳이 있었다니, 동자승같이 희고 매끄러운 아이의 머리통을 보는 순간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얼른 감추고 외면했다. 눈치 빠른 아이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입원실에서 보아왔던 암환자들의 모습과 다를 것 없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었던 건 면직 모자 하나를 사 씌운 정도였다.
   병원에서 실시한 항암 환자를 위한 위생교육을 받은 대로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를 위해 주변 관리와 위생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때로는 식구들의 왕래조차도 제한했고, 대면 시에는 서로가 마스크를 착용토록 했었다. 독한 항암제로 아이의 피부색이 검푸르게 변해갔고 몸에서는 역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항암 후 식사를 못하는 아이를 위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메뉴를 짰다. 항암 교육과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해독과 섭생에도 노력을 했다. 땀이 날 만큼의 운동은 기본이라는 주치의의 말을 귀담아 듣고, 늘 공기 좋은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운동도 열심히 시켰다. 점차 건강을 회복해가는 아이를 보며 비로소 웃는 날들이 찾아왔다. '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네 기도를 들었노라.'(열왕기하 20장 5절) 우리가 느끼고 깨닫지 못했을 뿐,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셨었고 느헤미야의 기도 뿐만 아니라 내 눈물을 보셨고, 내 기도에 응답하실 줄로 나는 믿는다.
***
   어디선가 본 글귀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제 각가의 운명 자루를 하나씩 메고 이 세상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수의 행운과 불운의 돌들이 들어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들은 그 돌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고난을 겪고 있다면 당신은 불운의 돌을 몇 개 먼저 꺼냈을 뿐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것은 행운의 돌 뿐이니 남보다 몇 배 더 큰 행운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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